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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국회 격인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5일 개막됐다.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전인대 첫날 발표한 정부 공작보고 중에서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12.2%라는 올해 국방비 지출 증가율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지도부는 집권 2년차까지는 경제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리는 추세가 강하고, 3년차부터는 외교안보 부문의 밑그림을 구체화한다. 따라서 올해의 군사비 증가율 추이는 향후 전개될 중국 외교안보 전략의 일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국 국방비 지출 증가율은 과거 20년 이상 대체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해 왔고, 이는 중국의 군사력 팽창과 위협을 드러내는 것으로 종종 인식돼 왔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는 군사비 증가율을 상대적으로 억제하려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는 점이다. 당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도 있었지만 중국 정부는 2010년 전례 없이 군사비 증가율을 국내총생산(GDP) 성장 목표인 10.4%에도 훨씬 못 미치는 7.5%로 책정했다. 이는 2010년 군부의 집단 반발을 샀다. 당시 중국의 민족주의 열풍과 공세적인 안보외교를 주도한 중국 군부의 발호와도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후-원 체제는 2011년 군사비 증가율을 12.7%로 급속히 확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후 비록 경제성장률보다는 높지만 중국의 군사비 증가율을 11.2%, 10.7%로 매년 낮췄다. 올해 전인대에서 제시한 중국의 국방비 증가율은 이러한 패턴을 역전시키면서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7.5%에 불과함에도 12.2% 증가율을 제시했다. 2014년은 최근 10년 중 경제성장률과 군사비 증가율의 격차가 가장 큰 해가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일본과의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필요한 일시적인 대응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미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시진핑 체제에서 보다 근본적인 외교안보 정향(定向)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양적으로는 아직 크게 가시화되지 않았지만, 중국의 외교안보는 거의 패러다임의 변화라 할 수 있는 움직임을 잉태하고 있다. 중국 외교는 더 이상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韜光養晦)적인 외교를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 보다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국가 이익을 수호하려는 의지를 분명히하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은 세계 2위의 경제 규모에 부응하고, 보다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외교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이번 군사비 증가율에서 잘 보여준 것이다. 중국 외교는 더 이상 양자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면서 중·장기적인 포석을 전제한 전략적 시각에서 재편성되고 있다. 보다 전문화하고 구체화하면서 자국의 국가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한 주변국의 대응 역시 심상찮다. 일본은 보통국가화를 목표로 국가 총동원 상태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북한은 핵(核) 보유를 더욱 공고히하면서 매력 공세 외교로 한국의 외교·안보력을 시험하고 있다. 경제력의 한계와 재정난에 직면한 미국은 국제적 개입을 주저하고 있으며, 지역 안정자로서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다. 올해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환경은 4각 파도에 직면하고 있는 형상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가장 안정적이라는 외교·안보 영역은 장차 중대한 시험에 직면할 것이다. 한·중 관계가 밀월관계에 들어갔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는 한시적이다. 중국이 곧 자국의 이해와 관련한 국가 의지를 드러낼 때 우리의 전략적 포석은 무엇인가? 그만큼 중국과 충분한 전략적 소통을 하면서 동시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을 축적해 가고 있는가? 자꾸만 불안한 시선으로 청와대를 바라보게 된다. 김흥규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화일보 1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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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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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조사에서 직업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 중의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교수다. 대학의 구조조정이라는 풍랑 속에 있지만 여전히 만족도가 높다.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 및 강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직업적인 특성 때문이다. 연구를 즐거워하고, 지식의 전달에 적성이 있는 경우, 교수라는 직업은 정말로 만족스러운 직업이다. 교수라는 직업에는 교육, 연구, 봉사라는 세가지 역할이 있다. 종종 이 세가지를 정확히 분리해서 난 교육만 하는 교수, 난 연구만 하는 교수 등으로 나누곤 하는데 필자는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물론 교육 중점 교수, 연구 중점 교수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난 교육만 하겠다’, ‘나는 연구만 하겠다’는 것은 이미 교수가 뭘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정의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과 연구는 대학 교수에게 있어서 결코 땔 수 없는 것이다. 기초 과목을 가르치더라도 그 교육의 사이사이에는 새로운 연구 분야에 대한 적절한 설명 및 해석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기초적인 배움이 어디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향후 어떻게 발전해 국가 발전 혹은 인간 생활에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사실 연구의 생리상, 2~3년 정도 연구에 손을 떼고 나면 사실 그 후 다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전자공학과 같이 그 변화주기가 굉장히 빠른 학문의 경우 특히 더하다. 3년 전의 논문을 읽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사실상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교육 중점 교수로 역할을 변경하게 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창의적이며 왕성한 연구활동에는 때가 있을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연구력도 다소 감쇠하곤 한다. 하지만 교육 경력은 점차 증가하니 자연스럽게 교육 중점 교수로 그 역할을 변경하는 것도 크게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닐 듯 하다. 20~30년 전만해도 사실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역할이 제대로 정의되어 있지 않았다. 연구라는 것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이 존재하지 않을 때 교수의 역할은 교육 및 봉사에 치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산업여건을 살펴봤을 때 20~30년 전의 단순 제조업에서 창의적인 생산으로 전환되는 시점이고 그에 따라 교수의 역할은 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학평가에서도 나타난다. 대부분의 대학 평가에서 대학의 교육, 연구, 봉사 중, 연구에 초점을 두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연구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현재의 급변하는 산업구조를 봤을 때, 새로운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발전적인 변화가 없는 교육, 10년전 강의노트를 꺼내어 그대로 진행하는 교육을 절대 안 된다. 주변에 ‘난 여건이 허락치 않아 논문을 쓰기 힘들다’ 혹은 ‘교육이 중요하니 난 교육에만 치중하겠어’라고 말하는 교수가 있곤 한다. 이는 ‘난 교수의 직업적인 정의를 잘 몰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그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는 봉사 부분이다. 학생들을 지도하고 관찰하는 의무 및 사회적 봉사가 있다. 정치판에 발을 들이는 교수도 어찌 보면 본인의 전문 지식을 사회 봉사의 차원에서 기여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교수의 현실 참여가 더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것도 그 이유라 생각된다. 세가지나 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교수는 알고 보면 결코 쉽거나 여유로운 직업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대단히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밤늦게까지 혹은 휴일에도 나와 연구, 교육 및 봉사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교범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 경기일보 14.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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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 작성자정우준
- 작성일201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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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사건 1심판결에서 수원지법 형사12부(김정운 부장판사)는 이석기 피고인에게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이상호·조양원·김홍열 피고인은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 홍순석 피고인은 징역 6년과 자격정지 6년, 한동근 피고인은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각각 선고했다. 형법상 내란의 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를 처벌한다. 형법 제91조는 국헌문란에 대하여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과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헌법은 헌법개정과정에서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요청하고 있고, 각 국가기관에 일정한 권한과 책무를 과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형법은 헌법의 명에 따라 국가와 헌법의 안전을 도모하는 법이다. 형법은 내란의 죄를 처벌함으로써 헌법을 방어하는 호위무사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다. 헌법을 의인화하자면, 매우 자존심과 자신감이 강한 법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헌법 제1조 제2항). 헌법은 곧 국민의 법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대한국민은”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헌법 전문)하고 있음을 천명하였다. 아울러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고(헌법 제10조 제1문), 사상․양심의 자유(헌법 19조)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헌법 제21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권력에 각인시키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개인들이 모여 국민이 된다. 헌법은 국민이고 국가이며 주권자이다. 어느 누구도 국민으로부터 국가로부터 주권자로부터 배제될 수 없다. 그런데 재판부는 헌법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이들이 ‘내란 모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실질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였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설령 내란을 모의했다고 해도 내란음모죄로 처벌하려면 내란의 폭동행위를 일으킬 구체적 의사와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녹취록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총, 폭파, 타격이란 말이 곧 행동으로 의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내란음모는 전국에 차고 넘친다. 불만과 격한 말은 곧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니 그 사람들의 연결고리를 만들면 내란음모조직을 만들어내어 처벌하는 일은 일도 아니다. 녹음기만 들고 뛰어다니면 된다. 내란음모 파파라치, 국가보안법 파파라치가 황금알을 낳을 판이다. 말로는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헌법을 허약한 존재로 내세우고 헌법을 참칭하여 권력의 칼을 휘두른 꼴이다. 두 번째로 재판부의 판단은 논리 모순과 비약의 연속이다. 과도하게 피고인들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전쟁 상황’, 즉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임박할 수 있는가, 130여 명의 사람이 ‘지체 없이 각 권역에서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 전국 다발적인 폭동’을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RO’ 또한 몇몇 사람들의 상호 호칭만으로 혁명조직이 되었다. ‘지휘체계를 갖춘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들’만 있었다. 내란을 일으킬 만한 실체가 있는지가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재판부의 논리는 피고인들의 예정, 정부의 기능 장애, 사회 혼란, 북한에 유리한 국면, 전쟁수행에 치명적 결과 등으로 이어진다. 이는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 국가정보원 등에 대한 과잉불신이다. 각 기관은 명예훼손소송이라고 걸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폭력적인 행위를 하거나 임박했을 때 공익건조물파괴죄나 폭발물사용 등의 죄로 처벌하면 될 일이다. 폭력적인 행위로 생길 수 있는 인적․물적 피해를 고려하여 범죄를 예방하면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사건 회합 당시가 전쟁위기 국면이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전시에도 인권을 보장하라는 헌법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재판부의 판단은 그저 상상의 연쇄반응이 일으킨 과대불안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제보자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 진술태도의 신빙성은 내란음모의 입증 요소 중 하나일 수 있어도 전부는 아니다. 한 사람의 말이라도 귀담아들어야 하는 것은 법원의 좋은 덕목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적으로 외면한 것에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제보자의 말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물질적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조선 시대나 그 이전의 역적죄 처단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인간 존엄, 사상․양심, 표현․신체의 자유를 보장하여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만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헌법 제12조)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결국 이번 내란음모사건에서 형법은 헌법을 보호하기는커녕 헌법을 볼모 삼아 정치권력의 수단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형법은 국가보안법에 짓눌리다가 그만 그 앞잡이가 되었다. 법원은 대한민국이 ‘헌법보다 국가보안법의 국가’임을 선언하였다. 헌법은 한 차례 회합에서의 몇 마디 말만으로도 겁을 먹은 허수아비가 되었다. 법원은 보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담은 국민의 약속으로서의 헌법을 저버렸다. 헌법은 국민을 지켜주지도 못하는, 그저 쓸모없는 허언(虛言)으로 전락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조차도 ‘헌법의 밖’으로 내치지 않는, 그 헌법이 아니었다. 대한국민의 헌법을 되살리는 일, 주권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신민(臣民)으로 전락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중의 소리 201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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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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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정우준
- 작성일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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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에 골은 두 가지가 있다. 두개골, 쇄골의 골은 뼈고 큰골, 작은골의 골은 뇌다. 해부학 용어에서는 헷갈리는 것을 막고자 골을 쓰지 않고 뼈와 뇌를 쓴다. 즉 두개골, 쇄골 대신 머리뼈, 빗장뼈를 쓰고 큰골, 작은골 대신 대뇌, 소뇌를 쓴다. 해부학 선생이 토박이말을 좋아하지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토박이말인 큰골, 작은골 대신에 한자어인 대뇌, 소뇌를 쓰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 글의 주제는 머리뼈다. 아직도 옛 용어인 두개골을 쓰는 사람이 있는데, 유치원 어린이도 알아듣는 머리뼈를 권한다. 해골바가지라고 쓰는 사람도 있는데, 해골은 어려운 한자어이고 바가지는 속된 말이라 권하지 않는다. 머리뼈는 영어로 스컬(skull)인데, 철자에 따라서 스쿨이라고 읽는 학생이 간혹 있다. 대학교의 단과대학은 영어로 칼리지(college)이지만, 의과대학은 스쿨(school)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처럼 오래 배운다고 남다르게(메디컬스쿨) 부르는 것이다. 머리뼈를 스쿨이라고 읽는 학생한테는 스쿨에서 스쿨을 배운다고 놀릴 수 있다. 북유럽(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 사람은 머리뼈를 스콜(skoal)이라고 부르는데, 스콜이 영어에서 스컬로 바뀌었다. 북유럽 사람은 축배 들 때 “스콜”이라고 외친다. 그들의 조상인 바이킹이 머리뼈에 술을 부어 축배를 든 것이 전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그들과 축배 들 때, 스콜을 잊어서 스컬이라고 외쳐도 알아듣는다. 스쿨이라고 외쳐도 알아듣는지는 모르겠는데, 못 알아들으면 그때 발음을 바로잡아도 괜찮다. 북유럽 문화를 따라 하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고마워한다. 바이킹은 머리뼈에 부은 술을 마시고 즐겼지만, 원효대사는 머리뼈에 담긴 물을 달게 마신 다음 나중에 알고 구역질하였다. 원효대사는 이렇게 생각했다. “머리뼈인 것을 몰랐을 때는 괜찮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원효대사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활동했는데, 이것을 네 글자로 줄이면 대사활동이다. 원효대사가 아닌 신진대사라고 이름 지었으면 딱 들어맞을 뻔했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머리뼈 때문에 구역질하는 학생은 없다. 머리뼈는 외울 구조가 많아서 오래 보고 만져야 하며, 따라서 그때 군것질하는 학생이 있을 뿐이다. 의대 학생은 원효대사와 달리 머리뼈를 보고 만지면서도 잘 먹거나 마신다. 키가 똑같은 남녀한테 헐렁한 옷을 입히고 가발을 씌우고 두꺼운 분장을 해서 남녀 차이를 없앴다고 치자. 그래도 남녀를 구별할 수 있는데, 이것은 남녀의 머리뼈가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다른 점의 하나로, 남자는 여자에 비해 눈썹 부위의 머리뼈가 더 튀어나왔다. 곁에 있는 사람을 봐도 눈썹 부위로 남녀를 구별할 수 있다. 덕분에 남자는 박치기로 적을 쳐부수기 좋다. 원시인은 그 부위의 머리뼈가 훨씬 튀어나와서 마치 무기처럼 보인다. 한편 원시인은 현대인보다 뇌가 작기 때문에 머리뼈 안도 작다. 원시인과 현대인이 싸우면 둘 다 머리를 쓸 것이다. 원시인이 쓰는 머리는 뼈이고, 현대인이 쓰는 머리는 뇌이다. 말장난을 하면, 둘 다 골을 쓸 것이다. 다른 뼈보다 머리뼈는 환경에 따라 쉽게 바뀐다. 그래서 머리뼈가 남녀마다, 진화 단계마다 많이 다른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원시인과 현대인의 머리뼈를 견주길 바란다. 이어서 사람의 머리뼈가 원숭이를 비롯한 짐승의 머리뼈와 어떻게 다른지 눈여겨보길 바란다. 사람은 진화하면서 머리뼈 안과 뇌가 커졌으며, 그 덕분에 지구를 다스리게 된 것을 깨달을 것이다. 물론 몸집에 비해 머리뼈 안과 뇌가 얼마나 큰지 따져야 한다. 그렇게 따지지 않으면 공룡 또는 고래가 지구를 다스렸을 것이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한겨레 201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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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정우준
- 작성일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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