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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술을 많이 마시고 출근하면 술 냄새가 난다. 옆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미안하고 위축된다. 다행히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그럴 걱정이 없다. 술 냄새가 실습실 본래의 냄새에 가려지기 때문이다. 나는 실습하는 학생한테 미안하지도 않고 위축되지도 않는다. 술기운으로 힘차게 가르친다. 음주운전이 아닌 음주교육을 하는 셈이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학교에서 음주교육을 단속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내가 갑자기 검문받아서 들키면 교육 정지 또는 교육 취소의 명령을 받을 텐데.’ 이처럼 해부학 선생의 죄를 ‘사면’해 주는 실습실 냄새는 무엇일까? 시신 냄새 더하기 고정액(방부제) 냄새이다. 나의 글솜씨로는 도저히 이 냄새를 표현할 수가 없다. 딱히 어느 냄새와 비슷하지도 않다. 그저 실습실 냄새라고 일컫겠다. 환기 시설을 잘 갖추어도 실습실 안팎에서 이 냄새가 난다. 의과대학의 남다른 공간이 해부학 실습실이듯, 의과대학의 남다른 냄새가 해부학 실습실 냄새다. 시신을 해부하는 선생과 학생은 이 냄새를 잘 견딘다. 처음에는 역겨워도 곧 익숙해진다. 문제는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해부해 본 적이 없는 교직원이다. 실습실 앞을 지나다가 냄새를 맡으면 괴로워한다. 해부하는 사람보다 냄새를 덜 맡는데 왜 괴로워할까? 정보가 적기 때문이다. 밤에 낯선 길을 홀로 걸으면, 정보가 적은 탓에 귀신을 비롯한 온갖 상상을 하게 되고 따라서 무섭다. 마찬가지로 시신을 안 본 채 냄새를 맡으면, 정보가 적은 탓에 온갖 상상을 하게 되고 따라서 괴롭다. 나는 퇴직할 때까지 실습실 냄새를 피할 수 없으니까 차라리 좋은 것으로 여긴다. 밥 먹고 실습실에 들어갈 때에는 양치질하지 않아도 된다. 고맙게도 실습실 냄새에 가려져서 입 냄새가 나지 않는다. 실습실에서는 방귀를 뀌어도 아무도 모른다. 굳이 참을 필요가 없다. 눈치가 빠른 학생은 나처럼 실습실 냄새를 잘 써먹는다. 내가 조교일 때 해부학 실습실에서 학생들과 해부를 하고 있는데 한 잡상인이 들어왔다. 나와 학생들은 잡상인을 내보내지 않고 멀뚱히 쳐다봤다.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잡상인은 냄새 때문에 얼굴을 찌푸렸고, 실습실 안을 제대로 볼 만한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더니 나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표정을 짓고 금방 나갔다. 잡상인, 빚쟁이, 좀도둑은 스스로 나가기 때문에 선생과 학생은 집중해서 실습하기가 좋다. 실습실에서 입는 흰 덧옷은 시신과 직접 닿기 때문에 냄새가 많이 배며, 아무리 빨아도 없어지지 않는다. 학생은 실습이 끝났을 때 흰 덧옷을 태워 버리거나, 대충 빨아서 후배한테 물려준다. 어떤 학생들은 어차피 다른 데서 쓸 수 없으니까 흰 덧옷에 각종 낙서를 한다. 해부학 용어를 적어서 외우는 학생도 있고, 인체 속 구조물을 그려서 표면해부학을 익히는 학생도 있다. 예를 들면 흰 덧옷의 소매에 팔 근육을 그리는 것이다. 물론 공부와 관계없이 가슴에 슈퍼맨 상징물을 그리는 학생도 있고, 등에 자기 전화번호와 함께 ‘애인 구함’을 적는 학생도 있다. 실습을 마친 다음 손을 깨끗하게 씻고 겉옷을 갈아입어도 몸에서 냄새가 난다. 버스, 지하철을 타면 다른 손님들이 나를 피한다. ‘저 사람한테 냄새가 나는데, 무슨 냄새일까? 처음 맡는 냄새인데, 기분 좋은 냄새는 아니다. 시궁창에서 일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굳이 가까이는 가지 말자.’ 덕분에 나는 대중교통을 호젓하게 이용한다. 집에 가서 목욕하고 속옷을 갈아입어도 냄새가 난다. 물론 가족은 어떤 냄새인지 아는데, 그렇다고 나를 멀리하지는 않는다. 어려운 일을 마치고 갔는데, 가족이 팽개치면 불쌍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해부한 것을, 즉 돈 벌려고 해부한 것을 가족은 잘 알고 있다. 돈 앞에서는 냄새도 별 힘을 쓰지 못한다. 해부학 실습실의 냄새와 그에 따라 생기는 일들은 하나의 문화이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한겨레 201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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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1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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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유명세는 빈번한 경제위기와 더불어 일부 국가들의 기나긴 내전 탓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50년 넘도록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콜롬비아에서 지난 5월 말 약 6개월의 평화회담 끝에 정부와 최대 반군조직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토지개혁을 통한 농촌 발전방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반군의 무장해제, 정치적 반대 행사 또는 정치 참여의 보장, 불법 마약거래 근절, 희생자들의 권리 구제, 평화협정 이행 등 협상 의제가 산적해 있긴 하지만. 내전은 1899~1902년의 ‘1000일 전쟁’, 1946~1958년 보수파와 자유주의 세력 간에 전개된 ‘대폭력’의 파생물로 볼 수 있으니 콜롬비아의 현대사 자체가 상호 적대와 불신의 고리로 연결된 셈이다. 난항이 예상되지만 금년 말까지 회담에 진전이 있다면,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엘살바도르의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과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선례처럼 좌익 게릴라 단체에서 합법적인 정치세력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1964년에 창설된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1990년대에 접어들어 정부군이나 우익 준군사 전투부대에 맞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마약거래, 불법 금 채굴, 요인 납치에 착수한 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지만 악마적 속성을 지닌 게릴라 단체가 됐다. 약 1만6000명에 이르던 대원은 2001년 9월11일 이전부터 미국 중앙정보국에 의해 국제 테러조직으로 낙인찍히고 2002년 반군 진압을 공언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된 알바로 우리베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공세를 전개한 결과 요즘에는 800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런 위기 가운데 인구가 많지 않은 동남부 농촌 지역을 여전히 통제하고 있는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작년 초 몸값을 노리는 납치활동의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10월에는 10년 만에 정부와 대면 협상을 재개하면서 합법화의 기회를 찾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다수가 대화를 지지하지만 전임 대통령 우리베를 비롯한 지배층은 대체로 반군과의 회담 구상을 비판하고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이 납치·재산 강탈·살인 등 범죄행위에 연루되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반군의 사면과 정치 참여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약 6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무려 500만명으로 추산되는 강제이주민을 낳은 콜롬비아의 내전 속에는 정부군과 게릴라 반군의 오랜 교전은 물론 마약거래상과 우익 준군사 단체,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마약거래 범죄 조직 등의 발호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콜롬비아인들이 갈등의 고리를 끊고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대폭력’의 와중에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콜롬비아의 비극은 휴전과 반목 상태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거듭 실패하고 있는 한반도의 고통과 닮은꼴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배제 대상을 일컫는 표현이 ‘빨갱이’에서 ‘종북좌파’로 변했지만, 자극적인 딱지 붙이기를 통한 적개심 고취의 구습은 여전하다. 적대관계의 선봉에 섰던 남북의 군 지휘관들이 2004년 6월 장성급 군사회담을 가진 바 있고 2007년 10월에는 남북 정상회담도 열렸지만 그뒤 관계 개선의 가능성은 군사적 긴장과 상호불신 속에 점점 희박해졌다. 정권을 뛰어넘어 일관된 대북정책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평화 정착의 염원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다시 맞이한 6월에 바라기는, 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는가라는 차원을 넘어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고, 파스칼이 꿰뚫어본 대로 선과 정의를 추구하려는 전쟁에서 “천사가 되려 하다가 모두 짐승이 되었다”는 통렬한 반성이 이어졌으면 한다. 그것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남북의 수많은 영령들에 대한 진지한 보훈이 아닐까? 박구병 아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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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지윤
- 작성일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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